네덜란드 동인도 회사(Nederlandse Oost-Indische Compagnie, VOC)는

2015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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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세기, 아리타 도자기가 세계로 퍼져 나가는 큰 계기가 된 것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와의 무역이었습니다. 중국 자기의 수출이 끊겼던 시대, VOC는 그 대안으로 일본 히젠 아리타의 자기에 주목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교역은 아리타 도자기를 'IMARI'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알렸고, 결국 서양 도자 문화 발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동아시아 무역의 혼란과 새로운 자기 수요

    17세기 후반, 중국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성립으로 국내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 경덕진의 자기 생산도 크게 감소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중국 자기를 주요 상품으로 삼았던 유럽 무역은 일시적으로 정체되었고, 각국의 상인들은 그 대체품을 찾게 됩니다.

    당시 아시아 무역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것은 1602년 네덜란드에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 VOC)였습니다. VOC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해상 무역을 담당하는 특허 회사였으며, 국가의 후원을 받아 독자적인 군대, 조선, 외교권까지 가진 "국책 기업"이었습니다.

    아리타와의 만남 ― "일본 자기"의 탄생

    중국의 내란으로 자기 공급이 끊겼던 시대, 새로운 공급처를 찾고 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주목한 곳은 일본 히젠 아리타였습니다.

    1616년, 아리타의 이즈미야마에서 자기의 원료인 도석이 발견되면서 일본에서도 처음으로 자기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초기 아리타 자기는 중국과 조선의 기술을 도입하면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결국 고품질의 백자와 아름다운 염색 자기를 생산하기에 이릅니다.

    VOC는 이 아리타 도자기를 유럽 수출의 주요 품목으로 채택했으며, 구워진 제품은 인근 이마리항에서 선적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에서는 아리타 도자기가 "이마리 자기(IMARI)"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매료시킨 "이마리"

    VOC에 의해 운반된 일본 자기는 암스테르담을 거쳐 프랑스, 독일, 영국, 그리고 북유럽의 왕후 귀족들의 식탁과 궁전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그 섬세한 염색 자기와 당시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벽한 백자의 빛깔은 "오리엔탈의 신비"로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그 영향은 결국 유럽 각지의 도예 산업에도 파급되어, 독일의 마이센 가마와 프랑스의 세브르 가마 등이 탄생하는 계기가 됩니다. 즉, 아리타 도자기는 "동양 자기의 모범"으로서 서양 도자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잠든 "바다를 건넌 아리타 자기"

    1697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의 무역선이 케이프타운 앞바다에서 침몰했습니다. 당시 인양된 화물 중에서 그 시대 아리타에서 구워진 백자 병과 항아리가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아프리카 경유가 VOC의 주요 무역 루트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집니다.

    이것들은 유럽으로 향하는 도중에 운송되던 것으로, 아리타 도자기가 이미 국제 무역의 일부로 취급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발굴품들은 현재도 남아프리카와 네덜란드의 박물관에 보존되어 "동과 서를 잇는 자기의 길"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증거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VOC와 일본의 관계 ― 데지마의 시대로